해외뉴스

“‘선종’이라 쓰고, 중립을 잃다 – 언론이 넘지 말아야 할 경계”

t요리왕 2025. 5. 4. 22:53

📌 '선종'이라 쓰며 중립을 잃은 언론 – 종교 표현의 경계는 어디까지인가


22일 필리핀 호세 아드빈쿨라 추기경이 교황 선종 후 진혼미사 중 마닐라 대성당 예배당에 전시된 프란치스코 교황 성상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로이터 연합뉴스

1️⃣ 프란치스코 교황의 죽음을 보도하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국내 주요 언론들도 일제히 그의 죽음을 전하며 ‘선종(善終)’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이는 경건하고 품위 있는 표현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과연 언론이 종교적 용어를 아무 설명 없이 그대로 사용하는 것이 적절한 일일까요?


2️⃣ ‘선종’은 단순한 완곡어가 아니다

‘선종’은 단지 “편안히 숨을 거두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가톨릭 교리에서 ‘선종’은 죽음 직전 병자성사와 고해성사를 받고, 큰 죄가 없는 상태로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신앙 안에서 모든 의무를 마치고 ‘거룩하게’ 세상을 떠났다는 교리적 확신이 담긴 표현입니다.

이처럼 특정 종교의 신앙 전제를 담고 있는 용어를 설명 없이 사용하는 것은 언론이 그 교리적 해석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셈입니다. 독자가 모두 가톨릭 신자가 아닌 상황에서, 이는 중립성을 위반하는 행위입니다.


3️⃣ 언론은 종교적 해석의 전달자가 아니다

언론은 사실을 전달하는 기관입니다. 그런데 ‘선종’이라는 표현을 무비판적으로 사용할 경우, 언론이 가톨릭 교회의 신앙적 관점을 공적인 언어처럼 보도하게 됩니다. 이는 종교의 언어가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며, 결과적으로 가톨릭 교회에 언어적 특권을 부여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인간적 현실입니다. 교황이라 해서 그 본질이 달라지진 않습니다. 그런데 언론이 그의 죽음을 특별히 ‘성스러운’ 것으로 미화한다면, 이는 종교적 미사여구로 현실을 가리는 셈입니다.


4️⃣ 언론의 중립성과 언어의 세속성

언론은 존경받는 인물에 대한 애도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표현이 종교적 확신에 기초한 단어일 필요는 없습니다. ‘서거’, ‘별세’, ‘타계’와 같이 세속적이고 품위 있는 용어도 충분히 존재합니다.

특정 종교의 내부 용어를 공적인 기사에 쓰는 순간, 언론은 종교 공동체의 내부 언어를 공공의 언어로 격상시키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는 사실상 종교적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일조하는 결과를 낳습니다.


5️⃣ 언론은 누구의 전령도 아니다

교황의 죽음을 보도하며 '선종'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언론이 종교 권위에 대한 비판적 거리 두기를 포기했다는 인상을 줍니다. 언론은 진실을 전하는 기관이지, 종교의 전령이 아닙니다. 언어를 통해 교회의 권위를 강화하는 데 기여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언론이 스스로를 돌아볼 때입니다. 죽음이라는 보편적 사실 앞에서는 누구에게든 똑같이 공정한 언어가 사용되어야 합니다. 종교에 대한 존중은 필요하지만, 언어에 있어서만큼은 엄격히 세속적이고 중립적인 태도가 언론의 기본입니다.


📝 요약

프란치스코 교황의 죽음을 전하며 언론들이 일제히 사용한 ‘선종’이라는 표현은 가톨릭 교리를 전제로 한 종교적 용어입니다. 이를 설명 없이 사용함으로써 언론은 사실상 특정 종교의 해석을 객관적 사실처럼 전달하게 되었고, 이는 중립성과 보편성을 포기한 태도입니다. 존경과 애도의 표현은 세속적 언어로도 충분히 가능하며, 언론은 종교적 권위에 기대지 않고 사실을 담담히 전달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