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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 영감과 논란의 이면

t요리왕 2024. 8. 2. 13:15

 

출처: 연합뉴스 / 프란치스코 교황

프란치스코의 평화의 기도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영감을 주는 기도로 여겨집니다. 이 기도는 성 프란치스코 아시시의 가르침을 반영하며, 가톨릭 신자들에게 중요한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기도가 작성된 시점이 오래된 만큼, 현대 사회에서의 적용에 대해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이 기도의 의미와 현실적 적용에 대해 다음과 같은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평화의 기도 전문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잘못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소서. 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아멘.

평화의 기도 심층 분석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이 문구는 개인이 평화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는 이상적인 목표를 제시합니다. 그러나 개인의 노력만으로 평화를 이루는 것이 어려운 현실도 있습니다. 중세 시기의 십자군 전쟁을 예로 들면, 가톨릭 교회는 평화보다는 군사적 확장을 추구했으며, 많은 사람들을 전쟁으로 내몰았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볼 때, 개인에게 평화의 도구가 되라고 하는 것은 때때로 비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잘못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둠이 있는 곳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게 하소서."

이 문구는 매우 이상적인 상황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종교 재판(Inquisition)을 통해 많은 사람들을 박해했습니다. 이 시기에 교회는 '진리'와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의혹을 품은 사람들을 잔혹하게 다루었으며, 이는 교회가 실제로는 미움과 다툼, 분열을 조장했음을 시사합니다. 따라서 이 문구는 교회의 역사적 행보와 모순될 수 있습니다.

 

"오, 위로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이 문구는 자기희생과 이타주의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는 때때로 피해자에게 부당한 부담을 줄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교회는 부패와 권력 남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었고, 이는 종교 개혁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피해자들에게 이해와 사랑을 강요하는 것은 교회의 과오를 덮으려는 시도로 비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문구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 이러한 이상주의를 실천하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특히, 용서함으로써 용서받는다는 개념은 때때로 피해자들에게 큰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가톨릭 교회는 면죄부 판매를 통해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많은 이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었습니다. 이러한 부패와 상업화는 평화의 기도의 메시지와 대비될 수 있습니다.

평화의 기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영감과 위로를 주지만, 그 이면에는 복잡한 역사적 맥락과 모순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하며, 우리가 이 기도를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할 것입니다.

면죄부 판매 모습을 묘사한 목판화(사진=위키피디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