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자를 위해 평생을 바쳤다는 자그마한 노파를, 감히 누가 헐뜯을 수 있을까요? 이 질문은 크리스토퍼 히친스가 1995년 펴낸 책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의 첫 문장입니다. 히친스는 마더 테레사에 대한 세계적 찬사를 향해 대담하게 도전장을 내밀었고, 그녀의 삶과 신념을 정면으로 해부했습니다.
그의 다큐멘터리 Hell’s Angel에서는 이렇게 묻습니다. "마더 테레사는 가난을 없애는 데 기여했는가? 아니면 가난을 미화하고 영속시키는 데 일조했는가?" 히친스는 후자라고 단언합니다.
2016년, 마더 테레사는 교황청에 의해 공식 시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성스러운 이미지 이면에 가려진 ‘지옥의 천사’라는 별명은 단순한 음해가 아닙니다. 아래에서 그녀의 행동과 철학,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며 진실에 접근해보고자 합니다.
1. 고통은 신의 선물인가, 인간의 고통인가?
마더 테레사의 사역 철학은 단순했습니다. "고통을 통해 예수가 우리를 가까이하신다." 그녀는 고통 자체를 ‘신의 축복’이라 여겼고, 이를 실제로 실천에 옮겼습니다. 문제는, 그 실천의 방식이 자비와는 거리가 멀었다는 데 있습니다.
칼루타의 '죽어가는 자들을 위한 집'에서는 기본적인 의료 조치조차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진통제도, 항생제도 없었습니다. 상처는 방치됐고, 주사 바늘은 제대로 소독되지 않은 채 재사용되었습니다. 히친스는 이를 **“가난한 자들을 위한 호스피스가 아니라, 가난한 자를 고통 속에서 죽게 내버려 두는 처형장”**이라 표현했습니다.
이 집에서 봉사했던 일부 간호사들은 “의학적 돌봄은 없고, 기도와 희생만 있었다”라고 증언합니다. 이쯤 되면 의문이 생깁니다. 그녀는 진정 가난한 자를 사랑했던 걸까요, 아니면 그들의 고통을 통해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려 했던 걸까요?
2.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지 않았다
마더 테레사는 평생 ‘가난을 위한 가난’을 외쳤지만, 정작 그녀 자신은 가난하게 살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고통받는 이들과 같은 공간에서 살지 않았고, 병들어 죽어가는 이들과 같은 침대에서 자지 않았습니다.
히친스는 이를 "가난을 숭배하면서도, 가난한 사람은 경멸하는 이중성"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녀는 고통받는 자들의 곁에 있었지만, 고통 그 자체에 매혹되어 있었지, 고통을 없애려 하지는 않았다”고도 덧붙였죠.
반면, 그녀가 해외 의료 시술을 받을 때는 최고급 병원을 이용했습니다. 이중잣대가 아닐까요? 왜 그녀는 가난한 이들에겐 진통제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은 마취와 항생제의 보호 아래 치료받았을까요?
3. 자금은 투명하게 쓰였는가?
마더 테레사 수녀회의 재정 규모는 상상 이상이었습니다. 전 세계에서 수천만 달러의 기부금이 몰려들었고, 바티칸은 물론 국제 기업, 정치인들도 그녀의 사역을 후원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부금이 어디로 흘러갔는지는 지금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히친스는 그녀가 돈의 출처나 사용처에 대해 철저히 함구했다고 지적합니다. 기부자 중에는 아이티의 독재자 뒤발리에 부부, 파시스트 정권, 금융 사기꾼 찰스 키팅도 포함돼 있었습니다. 히친스는 이를 “마더 테레사가 도덕성을 빌미로 얻은 명성을 권력자와 결탁하여 유지한 것”이라 비판합니다.
4. 낙태 반대, 피임 반대, 여성 억압 찬성
마더 테레사는 낙태와 피임을 일관되게 반대했습니다. 그녀는 심지어 1979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큰 파괴자는 낙태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전 세계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것이며, 특히 성폭력 피해자나 위험한 임신 상황에 놓인 여성들에게는 큰 고통이었습니다. 히친스는 “그녀는 여성의 고통에는 눈을 감았고, 남성 중심 종교 이데올로기에 충실했을 뿐”이라고 비판합니다.
또한, 마더 테레사는 종종 성폭력으로 임신한 여성들에게조차 낙태를 허용하지 않았고, 이를 죄악시했습니다. 그녀에게 중요한 것은 인간의 고통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 신의 뜻을 관찰하는 ‘도덕적 장치’였던 셈입니다.
5. 신념인가, 맹신인가
마더 테레사의 세계관은 단호했습니다. 고통은 축복이며, 신이 주신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신념이 의료와 인간의 존엄을 무시하는 수준에 이르면, 그것은 자비가 아니라 맹신입니다.
히친스는 그녀가 “가난한 자를 위해 산 것이 아니라, 가난이라는 개념 자체를 숭배했다”라고 지적합니다. 그는 "그녀는 고통받는 사람을 치유하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 고통을 통해 신과 가까워질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려 했다. 그러나 이는 인간의 삶을 수단화한 것에 불과하다"라고 말합니다.
성녀는 성스러운가, 혹은 성스럽다는 말로 면죄부를 얻는가
마더 테레사를 비판한다고 해서, 그녀의 모든 노력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이들이 그녀를 통해 위안을 얻었고, 그녀의 헌신을 진심으로 느꼈던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선의로 포장된 위선’을 비판하는 일은, 진짜 자비를 찾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입니다.
그녀는 성녀가 될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성녀라 불리기 위해선, 고통을 숭배할 것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려는 노력이 선행됐어야 하지 않을까요?
히친스의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우리는 성스러움에 면죄부를 줄 것인가, 아니면 그 이면을 직시할 용기를 가질 것인가?”
📌 각주
-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자비를 팔다(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 1995)』에서 마더 테레사를 날카롭게 비판하며, 그녀가 "가난을 미화했다"라고 주장했다.
- 다큐멘터리 Hell’s Angel은 1994년 BBC 채널 4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으로, 히친스가 직접 내레이션을 맡아 마더 테레사의 사역을 비판했다.
- 마더 테레사의 발언 "고통은 신이 주는 선물"은 여러 인터뷰와 연설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대표적으로 그녀는 “고통은 예수님의 고통에 동참하는 길”이라고 말하며, 진통제를 최소화하는 태도를 정당화했다.
- 히친스는 마더 테레사가 아이티의 독재자 장클로드 뒤발리에 부부를 “친구”라 칭하며 그의 정권을 지지한 점을 문제 삼았다. (The Missionary Position, p. 41)
- 찰스 키팅(Charles Keating)은 대규모 금융 사기를 벌인 인물로, 마더 테레사는 그의 기부금을 반환하라는 미국 법원의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 1979년 노벨평화상 수상 연설에서, 마더 테레사는 “세상에서 가장 큰 파괴자는 낙태입니다”라고 선언했다. 해당 연설은 노벨 재단 공식 웹사이트에서 확인 가능하다.
- 마더 테레사는 수녀회가 운영하는 병원에서는 기본적인 위생조차 지켜지지 않았으며, 정작 자신이 병에 걸렸을 땐 미국과 유럽의 최고급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Hell’s Angel, 다수 증언 참고)
- 그녀의 재정 사용처는 투명하게 공개된 적이 거의 없으며, 일부 추산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수천만 달러가 모금되었으나, 인도 내 복지 개선에는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
📚 참고 문헌
- Hitchens, Christopher. The Missionary Position: Mother Teresa in Theory and Practice. Verso, 1995.
- Hell’s Angel. Channel 4 documentary. Narrated by Christopher Hitchens, 1994.
- Mother Teresa. Nobel Peace Prize Acceptance Speech, 1979. Available at NobelPrize.org
- Robin Fox, “Mother Teresa's House of Illusions,” The Lancet, Vol. 336, Issue 8725, 1996.
- Sanal Edamaruku. “The Saint of the Gutters.” Rationalist International, 1996.
- David Van Biema, “Mother Teresa’s Crisis of Faith,” Time Magazine, Aug 23, 2007.
- Colette Livermore. Hope Endures: Leaving Mother Teresa, Losing Faith, and Searching for Meaning. Free Press,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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