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황 레오 14세, 왜 존경받을 수 없는가
― “성스러운 말 뒤에 숨은 너무나 세속적인 진실”
2025년, 가톨릭 교회는 새로운 교황을 맞았다.
이름은 레오 14세(본명 로버트 프리보스트).
첫 미국 출신 교황이자 “가난한 이들의 벗”이라는 수식어로 등장하며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의 이름 앞에는 점점 다른 단어들이 붙기 시작했다.
‘개혁자’ 대신 ‘위선자’, ‘성인’ 대신 ‘관리자’, 그리고 ‘구원자’ 대신 ‘면피자’.
그렇다면,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레오 14세가 왜 전 세계적으로 존경받지 못하고 있는지,
그 이유를 하나씩 살펴보자.
1️⃣ “성직자 성범죄 은폐, 나 몰라라”


가톨릭 교회의 가장 깊은 상처 ― 바로 성직자들의 아동 성범죄와 조직적 은폐다.
레오 14세 역시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가 페루 치클라요 교구 주교로 재직하던 시절(2000년대 중후반),
세 명의 여성이 “어린 시절 교구 사제에게 성폭력을 당했다”라고 신고했지만,
당시 주교였던 프리보스트(현 교황)는 적극적 조사를 개시하지 않았다.
피해자 중 한 명인 아나 마리아 키스페 디아즈 씨는 이렇게 증언했다.
“그는 ‘믿는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가해 사제는 처벌은커녕 조용히 다른 지역으로 이동됐다.
그런데 교구는 “피해자에게 정신적 지원을 제공했다”고 허위 보고까지 했다.
결국 피해자들은 2022년 바티칸에 프리보스트를 직접 고발하기에 이른다.
피해자 단체 SNAP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늘 가해자 편에 서 왔다.”
그런 인물이 이제 교황이 되었다.
과연 피해자들이 그를 신뢰할 수 있을까?
그는 즉위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성학대 피해자 대표들을 만났고,
그 자리에서 피해자들은 “무관용 정책(유죄 시 즉각 면직)” 도입을 촉구했다.
하지만 교황은 여전히 “검토하겠다”는 말만 남겼다.
결국 ‘아이들을 지키겠다’는 약속은 말뿐이었다.
“가해자에게 관대하고, 피해자에게 냉정한 교회.”
그의 교황직은 이 뼈아픈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 “투명성을 외치며 불투명하게 움직이다”
바티칸의 재정 문제는 오래된 미스터리다.
어디서 들어오고, 어디로 나가며, 누가 결정하는지 ―
아무도 명확히 모른다.
프란치스코 전 교황이 “재정 투명성 개혁”을 외치며 몇몇 개혁을 시도했지만,
레오 14세는 그 흐름을 되돌렸다.
그는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 시절,
외부 회계감사 도입에 미온적이었고,
교황청 재정보고서 발간도 사실상 중단됐다.
“투명성을 말하면서 불투명하게 행동한다.”
이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라,
그의 행정 스타일을 정확히 묘사한 문장이다.
재정 개혁을 추진하던 개혁파 인사들은 잇따라 좌천되었고,
교황청 재무개혁은 흐지부지되었다.
결국 남은 건 ‘현상 유지’와 ‘교회 체면 관리’.
가난한 자를 위한다는 교황이,
정작 교회의 돈 문제 앞에서는 한없이 조심스러워지는 아이러니.
“그의 투명성은 말에만 존재한다”는 비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3️⃣ “여성 평신도? 듣긴 하겠지만 결정은 우리가”
프란치스코 시대에는 조심스럽게 열리던 문이 있었다.
여성 평신도들이 교황청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시노드(주교회의)에서 발언권과 투표권을 갖는 변화 말이다.
하지만 레오 14세는 이 창문을 살짝 닫았다.
그는 2023년 시노드에서 이렇게 말했다.
“평신도의 발언권 확대는 신중해야 한다.”
그 결과, 여성 발언권은 줄고,
결정권을 가진 여성 대표 수도자의 수는 극히 적었다.
그의 발언 하나로,
교회 내 여성 참여의 시계가 다시 과거로 돌아간 셈이다.
여성 사제 서품은 여전히 불가,
동성혼은 “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이 결혼”이라는 고전적 입장으로 회귀.
성소수자 인권을 향한 작은 진전조차 ‘전통의 이름으로’ 되돌려졌다.
결국 ‘포용’을 외치는 교황의 입에서
‘배제’의 논리가 흘러나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4️⃣ “가난한 교회? 그런데 왜 이렇게 부자 같지?”
레오 14세는 이름부터 “레오 13세의 정신”을 계승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동자, 가난한 자, 환경을 위한 교회.”
말로만 들으면 완벽하다.
그런데 문제는, 말뿐이라는 것.
그는 기후 위기를 언급하며 “지구의 고통에 귀 기울이자”고 외쳤지만,
바티칸의 화석연료 투자 철수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추진하던 탄소중립 프로젝트도 속도가 떨어졌다.
환경단체의 말은 간단하다.
“교황이 말하는 녹색은 잔디색이지, 정책색이 아니다.”
게다가 “가난한 교회”를 말하면서
바티칸의 자산과 미술품, 고급 부동산은 여전히 그대로다.
“성전의 금은 빛나지만, 거리의 사람은 여전히 굶는다.”
결국 ‘가난한 교회’는 이상이 아니라 이미지에 머물렀고,
레오 14세의 메시지는 공허한 수사로 들리기 시작했다.
5️⃣ “정치엔 관여하지 않는다면서…?”
교황은 정치적으로 중립이어야 한다는 게 교회 전통이다.
하지만 레오 14세는 그 선을 꽤 자주 넘나든다.
그는 즉위 후 “민족주의는 인류의 적”이라며 각국 우익 정당을 비판했고,
심지어 미국-캐나다 무역갈등에 대한 우려까지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자국 이슈에 입을 댄 첫 미국인 교황”이란 말이 나왔고,
결국 ‘보편적 중립’은 ‘정치적 발언’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그는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와의 주교 임명 합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인권보다 외교를 택한 교황”이라는 비판을 낳았다.
정리하자면, 그는 도덕적 설교자는 될지언정, 도덕적 지도자는 아니다.
🧩 결론 ― “성스러움은 행동에서 나오지, 옷에서 나오지 않는다”
레오 14세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의 개혁 교황”으로 포장된다.
하지만 그 미소 뒤에는,
은폐, 방조, 불투명, 배제, 그리고 정치적 계산이 자리하고 있다.
그는 프란치스코의 개혁을 계승한 것이 아니라,
‘성스러움의 외피’를 되살린 인물일지 모른다.
진짜 개혁은 말로가 아니라 선택으로 증명된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그의 선택들은,
존경보다는 의심을 부르고 있다.



⌚ 264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재위: 1978년 10월 16일-2005년 4월 2일(26년 이상)
- 롤렉스 데이트저스트 1601 모델 착용
→ 당시 3,000달러 정도로 알려짐
→ 현재 1970년대 중고가 약 5,000달러(650만 원)
- 원래 교황은 세속적인 시간 관리를 상징하는
손목시계와 거리가 멀었으나
요한 바오로 2세가 관습을 깸
- 교황 최초로 손목시계 차고 스키와 등산 즐김
⌚ 265대 교황 베네딕토 16세
- 재위 2005년 4월 19일-2013년 2월 28일(7년 이상)
- 독일 명품 융한스 템푸스 착용
- 프라다 구두, 파텍 필립 시계 등
명품 가지고 있단 논란 많았지만 공식 확인 없음
- 명품 논란에 지친 베네딕토 16세는
이듬해 저서 ‘세상의 빛’에서
애용하는 시계는 여동생이 죽기 전에 남긴
1960~70년대 융한스 제품이라 해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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