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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

“침묵한 교회: 아르헨티나 ‘더러운 전쟁’과 가톨릭의 그림자”

침묵한 교회

— 아르헨티나 ‘더러운 전쟁’과 가톨릭교회의 그림자

1970년대 아르헨티나는 한동안 공포의 시대를 겪었다.
1976년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군부 정권은 “국가 안보”와 “반공(反共)”을 내세워 대대적인 정치 탄압을 벌였다.

이 시기를 역사에서는 흔히 **Dirty War(더러운 전쟁)**이라고 부른다.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어진 이 기간 동안

  • 최소 13,000명
  • 인권단체 추산 30,000명

이 체포·고문·살해되거나 **“실종”**되었다.

그리고 이 어두운 역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지금도 묻는 질문이 있다.

“그때 교회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https://www.abc.net.au/news/2013-05-18/argentine-dirty-war-leader-jorge-rafael-videla-dies/4697798


군사정권과 가까웠던 교회

당시 아르헨티나는 전통적으로 가톨릭 영향력이 매우 강한 나라였다.

군사 쿠데타로 집권한 정권의 지도자는

Jorge Rafael Videla

2010년 재판 당시 법정에 서 있는 모습이 사진에 담긴 호르헤 라파엘 비델라가 8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  디에고 리마: AFP  )

그가 이끄는 군부는 자신들을 기독교 문명을 지키는 세력으로 묘사했다.

이 때문에 초기에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쿠데타를 질서 회복으로 이해하거나 최소한 묵인했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가톨릭 주교단은

  • 군사정권을 공개적으로 강하게 비판하지 않았고
  • 정부와 대화 채널을 유지하는 전략을 택했다.

이 과정에서 교회는 애매한 입장을 취했다.

폭력은 우려하면서도
정부의 안보 정책에는 이해를 표하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성직자도 피해자가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성직자가 정권에 협력했던 것은 아니다.

일부 사제와 수녀들은

  • 빈민 운동
  • 사회 정의 운동

에 참여하다가 군사정권의 탄압 대상이 되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Enrique Angelelli

그는 군사정권을 비판하다가 1976년 의문사했다.
훗날 조사에서는 사실상 정치적 살해로 인정됐다.

하지만 문제는
교회 조직 전체의 대응이었다.

개별 성직자들이 희생되는 상황에서도
교회 지도부는 공개적으로 강하게 항의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던 ‘실종 정책’

최근 연구에 따르면
1979년경 아르헨티나 주교단은 이미

  • 정부가 시민들을 비밀리에 납치하고
  • 고문과 살해를 자행하며
  • 시신을 숨기고 있다는 사실

내부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개적인 비판 성명은 나오지 않았다.

이유는 비교적 분명했다.

당시 교회 지도부는

  • 공산주의 확산에 대한 두려움
  • 정권과의 관계 악화 우려

때문에 공개 충돌을 피했다.

결국 교회는 알면서도 침묵한 셈이었다.


고문에 협력한 신부

이 사건에서 가장 충격적인 사례는
한 성직자의 범죄였다.

Christian von Wernich

폰 베르니히는 방탄조끼를 입고 법정에 출두했다.

그는 경찰 조직의 영적 지도 신부로 활동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군사정권의 비밀 구금시설을 드나들며

  • 죄수의 고해성사를 듣는 척하며 정보를 얻고
  • 그 정보를 군경에 전달해
  • 추가 체포와 고문을 돕는 역할을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또한 그는

  • 고문 현장에 동석하거나
  • 처형 직전 희생자에게 최후 성사를 집전하며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는 증언도 있다.

결국 그는

  • 7건의 살인
  • 42건의 납치
  • 31건의 고문

에 공모한 혐의로
2007년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이 재판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었다.

가톨릭 사제가 반인륜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은 첫 사례였기 때문이다.


“죽음의 비행”

당시 군사정권은
체포한 사람들을 비행기에서 바다로 던져 죽이는

“죽음의 비행”

이라는 방식으로 살해하기도 했다.

1977년에는 프랑스 출신 수녀 두 명과
봉사자 세 명이 납치되어 이 방식으로 살해됐다.

이 사건 역시 국제적 충격을 줬지만
당시 교회 지도부의 공개적인 강한 항의는 거의 없었다.


독재 이후의 뒤늦은 성찰

군사정권이 붕괴한 이후
아르헨티나 사회는 진실 규명 작업을 시작했다.

1984년 진실위원회 보고서가 발표되었고
수많은 실종 사례가 기록되었다.

하지만 교회의 역할은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는 비판이 있었다.

1995년이 되어서야
아르헨티나 주교단은 다음과 같은 표현을 남겼다.

“우리는 과거에 더 단호히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에 부끄러움을 느낀다.”

그러나 교회의 구조적 책임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쟁이 이어졌다.


교황 프란치스코와 역사 조사

https://www.rappler.com/world/23819-pope-argentina-dirty-war/

 

Pope Francis and Argentina's dirty war

Pope Francis' alleged involvement in Argentina's 'Dirty War' casts a shadow over his appointment as pontiff

www.rappler.com

 

이 문제는 21세기 들어 다시 주목받았다.

현재 교황인

Pope Francis

은 과거 아르헨티나 교회 지도부였던 인물이기 때문이다.

논란이 커지자 그는

  • 군사정권 관련 바티칸 문서 공개
  • 교회 내부 연구 프로젝트

를 승인했다.

2023년 연구 보고서는 중요한 결론을 내렸다.

교회 지도부는 1979년에 이미 실종 정책을 알고 있었지만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공개 항의를 하지 않았다.


피해자 가족들의 질문

아르헨티나에는 지금도
실종자 가족 단체가 있다.

대표적으로

Mothers of the Plaza de Mayo

이들은 수십 년 동안 진실을 요구해 왔다.

그들이 남긴 말은 유명하다.

“우리는 국가에서도 정의를 얻지 못했고
신의 집에서도 정의를 듣지 못했다.”


이 사건이 남긴 교훈

아르헨티나 군사정권 시기의 교회 사례는
종교와 권력이 결합할 때 어떤 문제가 생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교훈이 있다.

첫째, 도덕적 권위는 침묵 속에서 무너진다.

교회는 정의의 편에 서야 할 도덕적 기관이지만
정치권력 앞에서 침묵할 때
그 권위는 쉽게 흔들린다.

둘째, 이념은 도덕을 흐릴 수 있다.

냉전 시기의 반공 이데올로기는
국가폭력이라는 더 큰 문제를
가려버리는 역할을 했다.

셋째, 조직은 때때로 개인의 양심보다 침묵을 선택한다.

많은 성직자들이 개인적으로는 문제를 알고 있었지만
조직 전체는 공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아르헨티나의 이 경험은
지금도 중요한 질문을 남긴다.

종교가 권력과 가까워질 때
그 신앙은 누구의 편에 서게 되는가?

이 질문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