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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

“기도보다 은폐가 먼저였다” — 벨기에 가톨릭, 성직자의 죄를 덮은 자들의 이야기와 아이들의 절규

 

by ESQUIRE

벨기에 가톨릭, ‘거룩함’ 뒤의 어두운 그림자

벨기에 가톨릭교회의 성추행 사건을 조사해 온 아드리안센스 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보고서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475건의 성직자 성학대 사례, 그리고 그중 13명의 피해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비극.
숫자로만 봐도 아찔하지만, 이건 통계가 아니라 사람의 삶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신부님을 믿었던 아이들이, 그 신뢰를 배신당하고 평생의 트라우마를 짊어진 채 살아가다 결국 절망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생존자 124명의 생생한 증언이 200쪽에 걸쳐 담겼습니다.
피해자 대부분은 10세 전후의 아이들이었고, 어떤 경우에는 고작 2살 때부터 학대가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조사위원장 페터르 아드리안센스는 “이건 마치 연쇄살인범의 범행을 연상케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광범위하고 반복적이었다는 뜻이죠.


‘조용히 기다려라’는 추기경의 한마디

벨기에 사회를 경악시킨 건 단지 범죄의 규모가 아니었습니다.
은폐의 방식이 너무나 조직적이었다는 점이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로저 반헬루웨 주교 사건입니다.
그는 수년간 자신의 조카를 성적으로 학대했고, 결국 2010년 사임했습니다.
그런데 사임의 배경에는 믿을 수 없는 녹취 파일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인 조카가 당시 브뤼셀 대교구장 고드프리드 다넬스 추기경과 나눈 대화를 녹음한 것이었죠.
녹취록 속에서 추기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조용히 기다리세요. 주교님은 내년에 은퇴하실 겁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알리지 말고 그냥 덮자”는 겁니다.
게다가 “그분의 이름을 진창에 끌고 들어가지 말라”는 말까지 덧붙였죠.
가해자를 감싸고 피해자에게 침묵을 요구한 것입니다.

이에 피해자는 절규했습니다.

“그 사람이야말로 제 삶을 진창에 끌고 들어간 사람인데, 왜 교회는 가해자의 편만 듭니까?”

 

이 녹취록이 공개되자 벨기에 사회는 폭발했습니다.
결국 반헬루웨 주교는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이미 수십 년 동안 교회는 이 사건을 알고도 입을 다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은총’보다 ‘은폐’가 먼저였던 교회

이건 단 한 사람의 일탈이 아니었습니다.
이건 ‘교회 안의 침묵의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은가를 보여주는 사건이었습니다.

1983년, 한 여성 피해자가 17세 때 사제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교구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돌아온 건 **“묵살”**이었습니다.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지만, 피해자를 외면하는 교회 지도자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벨기에 뿐 아니라 아일랜드, 독일, 미국 등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잇따라 터졌습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도대체 교회는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바티칸의 ‘거룩한 분노’? 아니, 자기 방어

벨기에 사법당국이 2010년 6월 교회 시설을 전격 압수수색했을 때,
교황청의 반응은 의외로 **‘피해자에 대한 공감’이 아닌 ‘분노’**였습니다.

 

 

당시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충격적이고 개탄스럽다”며 불쾌감을 표시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충격’은 피해자가 아니라 교회가 조사받는 상황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교황청은 “교회 내부 문제에 대한 부당한 개입”이라고 항의했습니다.

결국 아드리안센스 위원회가 수집한 475건의 피해 자료 전부가 경찰에 압수되었고, 위원회는 사실상 해체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교회가 스스로 만든 ‘조사기구’가 가장 먼저 교회에 의해 무력화된 셈이죠.

벨기에 사법부는 냉정하게 말했습니다.

“성범죄를 조사하고 처벌할 권한은 교회가 아니라 사법당국에 있다.”

하지만 교회는 끝까지 체면을 지키려 했습니다.
결국 ‘진실’보다 ‘이미지’가 더 중요한 조직임을 스스로 입증해 버린 것이죠.

 

 

 


침묵은 은혜가 아니라 공범이다

벨기에 교회의 성학대 스캔들은 단지 한 나라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권위와 침묵이 결합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인류 보편의 경고입니다.

교회는 뒤늦게 “제로 톨러런스(Zero Tolerance)”를 선언했지만,
그 약속이 나오기까지 너무 많은 피해자들이 희생되었습니다.

벨기에의 비극은 우리 사회에도 거울이 됩니다.
학교, 군대, 직장, 종교 단체… 권위적인 조직일수록 내부 문제를 숨기려 합니다.
하지만 침묵은 은혜가 아니라 공범입니다.

누구든 법과 윤리 앞에서는 예외일 수 없습니다.
가장 약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주는 사회만이 진짜 정의로운 사회입니다.
벨기에의 눈물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감추는 순간, 교회는 더 이상 신의 집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