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의 대주교, 거룩함 뒤에 숨은 추악한 범죄
괌(Guam)에서 수십 년간 ‘하느님의 대리자’로 군림하던 앤서니 아푸론(Anthony Apuron) 전 대주교가 미성년자 성학대 혐의로 교황청의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결과적으로 그는 대주교 자리에서 쫓겨났지만, 여전히 “성직자 신분”은 유지 중입니다. 쉽게 말해 직함은 잃었지만, 옷은 그대로 입고 있는 셈이죠.
피해자들과 시민단체가 “이게 처벌이냐?”며 분노하는 이유입니다.
아푸론은 1986년부터 괌 아가냐 대교구를 이끌며 지역 사회의 ‘영적 지도자’로 추앙받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가 쌓은 명성의 밑바닥에는 끔찍한 진실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1970년대, 그는 본당 사제로 일하면서 여러 소년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저질렀습니다. 피해자들의 증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무려 40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피해자들은 “신의 이름으로 침묵하라”는 압박 속에 죄책감과 트라우마를 홀로 짊어져야 했습니다.
문제는 교회가 이 사건을 어떻게 다뤘느냐입니다. 2014년, 의혹이 처음 제기됐을 때 괌 교구는 “피해자가 직접 나서지 않았다”며 조사조차 거부했습니다. 아푸론은 되레 피해자들을 향해 명예훼손 소송을 운운하며 입막음을 시도했죠. 내부에서 개선 요구가 나오면 해당 인사를 쫓아내는 식이었습니다. 평신도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자, 그는 그들을 “교회를 분열시키는 세력”이라 몰아붙이며 입을 막았습니다. 신의 집은 그렇게, 범죄 은폐의 성역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사건이 더는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커지자, 결국 바티칸이 개입했습니다. 2016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푸론을 직무정지시키고, 임시 교구장을 파견했습니다. 그리고 2018년, 교황청 교회법 재판부는 일부 혐의에 대해 유죄를 확정하며 아푸론을 대주교직에서 해임했습니다. 아푸론은 항소했지만 2019년 기각되었고, 그의 죄는 공식 확정되었습니다.
그런데—여기서부터가 문제의 핵심입니다.

교황청은 아푸론의 ‘대주교직’만 박탈했을 뿐, 그를 완전히 성직 박탈(환속) 시키지 않았습니다. 즉, 그가 여전히 “신부님”이라 불릴 자격이 남은 겁니다. 피해자들은 “40년 동안 침묵한 죄보다, 이 미온한 판결이 더 고통스럽다”라고 분노했습니다.
더 기막힌 건, 아푸론 본인의 반응입니다. 그는 “내가 성직에서 완전히 쫓겨나지 않은 건 내 결백의 증거”라며, 오히려 자신을 ‘피해자’로 포장했습니다. 가해자가 가톨릭의 관대함을 면죄부로 착각하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죠.
이 사건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일탈이 아닙니다. ‘대주교’라는 거룩한 지위가 어떻게 권력과 면죄의 방패로 악용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사례입니다. 교회의 권위와 신자들의 신뢰를 이용해 그는 피해자의 입을 막고, 공동체의 눈과 귀를 가렸습니다. 그 결과, 하느님의 제단은 정의의 공간이 아니라 범죄 은신처로 전락했습니다.
이건 괌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 유럽, 남미 등 전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사건들이 터졌습니다.

구조는 늘 같죠 — 가해자는 성직자, 피해자는 침묵, 교회는 은폐.
이제 우리 사회와 한국 가톨릭도 이 거울 앞에 서야 합니다. “권위”라는 이름으로 진실을 덮는 순간, 그 조직은 신성함을 잃습니다. 교회의 명예가 아니라 피해자의 존엄이 보호받아야 합니다. 성직자는 면죄부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더 높은 도덕적 기준을 지켜야 할 사람들입니다.
괌 대주교의 추락은 끝이 아니라 경고입니다. 우리가 침묵의 문화를 끊지 않는다면, 또 다른 ‘아푸론’은 언제든 태어날 수 있습니다.
거룩함이 범죄의 가면이 되지 않도록, 이제는 성직보다 인간의 양심이 먼저인 교회를 세워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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