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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뉴스

예수님이 고쳐주신다더니… 극단적 신앙이 만든 미국 아동 사망 사건

■ “예수님이 고쳐주실 거야”라고 버티는 사이, 아이는 숨이 멎었습니다

2013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

생후 8개월 된 아기 브랜든 쉐이블은 고열과 호흡곤란, 탈수 증세로 심하게 앓고 있었습니다.
숨을 헐떡이고, 젖도 제대로 못 먹고, 몸은 점점 축 처졌습니다.

일반 부모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당연히 응급실부터 달려갔겠죠.

 

그런데 그의 부모는 병원 대신 거실에 앉았습니다.

손을 얹고 기도했습니다.
성경을 읽었습니다.
“예수의 보혈로 치유될 것이다”를 반복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는 끝내 죽었습니다.

폐렴이었습니다.
의사들은 기본적인 항생제 치료만 했어도 살 가능성이 높았다고 밝혔습니다.

한마디로 말해,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었던 게 아닙니다.

살릴 방법을 믿음이라는 이름으로 거부한 겁니다.


■ 더 충격적인 사실: 이 부모는 이미 한 번 같은 방식으로 아이를 잃었습니다

여기서 사건이 소름 끼치는 이유가 나옵니다.

이 쉐이블 부부는 처음 이런 일을 겪은 부모가 아니었습니다.

무려 4년 전인 2009년에도 첫째 아들 켄트(2세)를 똑같이 폐렴으로 잃었습니다.

그때도 병원은 안 갔습니다.
그때도 약은 안 먹였습니다.
그때도 기도만 했습니다.

결과는 첫째 사망.

당시 법원은 이들에게 아동 방임 책임을 물었고,
향후 자녀가 아프면 반드시 의사의 진료를 받게 하라는 조건으로 10년 보호관찰 명령을 내렸습니다.

쉽게 말해 국가는 이미 경고했습니다.

“다음엔 이러면 안 됩니다. 아이는 치료받아야 합니다.”

그런데도 이 부부는 두 번째 아이 앞에서도 똑같이 행동했습니다.

이쯤 되면 실수나 무지가 아닙니다.

교리가 상식 위에 올라탄 상태입니다.


■ 왜 병원을 안 갔나? 이유는 단 하나, “의사는 믿음 없는 자가 찾는 곳”

이 부부가 속한 교회는 First Century Gospel Church라는 극단적 신앙치유 공동체였습니다.

이 교회는 아주 단순한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 약을 먹는 것은 믿음 부족
  • 병원에 가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행위
  • 진짜 신자는 기도로 치유받아야 함

말은 거창하지만 요약하면 이겁니다.

“항생제보다 기도가 세다.”

문제는 폐렴균이 성경 구절 듣고 물러가 주지 않는다는 거죠.

실제로 이 교회는 백신, 의사, 약물, 심지어 안경 같은 기본 의료도 불신하는 반의학적 분위기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니 부모 입장에서는 아이가 아파도
“병원에 데려가야 하나?”가 아니라
“병원에 가면 내가 하나님을 배신하는 건가?”가 먼저 떠오른 겁니다.

종교가 사람을 위로해야 하는데,
이쯤 되면 종교가 사람의 판단력을 압수한 셈이죠.


■ 더 황당한 건 교회 반응이었습니다: “부모의 영성이 부족해서 아이가 죽었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교회가 충격을 받고 교리를 재검토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교회 지도자 넬슨 클라크는 오히려
“아이들이 죽은 건 부모의 영적 부족 때문”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네, 잘 들으셨습니다.

의학을 거부하라고 가르친 교회가
아이가 죽자 “믿음이 부족했다”고 부모에게 책임을 떠넘긴 겁니다.

이건 참 편리한 구조입니다.

  • 살면 하나님 기적
  • 죽으면 신도 믿음 부족

교회는 절대 틀리지 않습니다.
결과가 어떻든 책임은 항상 신도 몫입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교리가 사람을 죽여도 교리는 살아남습니다.

왜냐하면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구조니까요.


■ 법원은 결국 직설적으로 말했습니다: “이건 신앙이 아니라 살인 방임이다”

2014년 재판에서 판사 벤저민 러너는 아주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2013년 4월은 브랜든이 죽을 때가 아니었다.”
“당신들은 두 아이를 죽였다. 하나님도, 교회도, 종교적 헌신도 아니다. 바로 당신들이다.”

이 말이 왜 중요하냐면,

미국 사회가 이 사건을 통해 분명히 선을 그었기 때문입니다.

종교 자유는 인정한다.
하지만 아이를 죽일 자유까지 포함되진 않는다.

이건 매우 중요한 원칙입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가
타인의 생명권 위에 올라서는 순간,
그건 자유가 아니라 특권이 되기 때문입니다.


■ 살아남은 7명의 자녀는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와 떨어진 뒤 처음 의료혜택을 받았습니다

두 아이가 죽은 뒤 나머지 7명의 자녀들은 위탁가정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처음으로

  • 정기 건강검진
  • 예방접종
  • 시력 검사
  • 필요한 안경 지급

같은 기본 의료 서비스를 받았습니다.

참 씁쓸하죠.

부모 곁을 떠나서야 비로소 아이들이 정상적인 보호를 받게 된 겁니다.

즉 그 집에서는 사랑이 없었던 게 아니라
사랑보다 맹신이 더 강했던 겁니다.

부모는 분명 아이를 사랑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랑한다고 해서 옳은 판단을 하는 건 아닙니다.

잘못된 믿음은
사랑조차 치명적인 결과로 바꿔버릴 수 있습니다.


■ 이 사건이 남긴 가장 불편한 질문: 믿음은 언제부터 의학보다 우위가 되었나?

기도는 위로가 될 수 있습니다.
신앙은 병든 가족에게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의학을 대체하는 순간입니다.

열이 40도인데 찬송가를 더 크게 부른다고 세균이 놀라 도망가진 않습니다.
폐렴균은 아멘 소리에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극단적 종교 공동체는 자꾸 이런 착각을 만듭니다.

“진짜 믿는 사람은 병원 안 간다.”

이 말이 무서운 이유는
결국 병원에 가는 부모를 죄인처럼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죄책감을 주입당한 부모는
아이를 살릴 마지막 기회마저 포기하게 됩니다.

쉐이블 사건은 바로 그 참혹한 결과였습니다.


■ 결론: 하나님을 믿는 것과 항생제를 거부하는 것은 같은 말이 아닙니다

허버트와 캐서린 샤이블 부부는 생후 8개월 된 아들의 폐렴 사망 사건과 관련하여 3급 살인 및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될 예정이다. (AP 사진/필라델피아 경찰서)

 

허버트 쉐이블 부부 사건은
신앙이 너무 강해서 벌어진 비극이 아닙니다.

정확히는,

신앙이라는 이름으로 상식과 과학을 밀어낸 비극입니다.

아이들은 병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니라
병을 치료할 수단을 금지한 교리 때문에 죽었습니다.

그리고 그 교리는 부모의 손을 빌려
두 번이나 같은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기도는 병실에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병실 대신 기도실만 선택하는 순간,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방임이 됩니다.